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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쿠바인들의 분노, 어떤 변화 가져올까

대규모 시위 잦아들었지만 불씨 남아…쿠바·미 당국, 정책 변화 주목

등록일 2021년07월21일 12시12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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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 사진이 걸린 쿠바 아바나 거리

카리브해 공산국가 쿠바에서 이례적인 대규모 반(反)정부 시위가 발생한 지 열흘 가까이 지났다.
 

정부의 온·오프라인 통제 속에 시위는 빠르게 잦아들었지만, 한 번 터져 나온 분노는 여전히 수면 아래서 끓어오르며 쿠바 사회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 수십 년 만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불씨는 여전
지난 11일(현지시간) 시위가 시작된 곳은 수도 아바나 남쪽 도시 산안토니오데로스바뇨스였다.

여러 시간 이어진 정전에 참다못한 주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정부를 향해 불만과 분노를 토로했다.

시위는 소셜미디어 등을 타고 들불처럼 번져 이날 아바나와 산티아고데쿠바 등 쿠바 40여 곳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 참가 인원은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다. 딱히 주최 측이 있는 시위도 아니었고, 경찰도 '추산' 인원을 공개하지 않았다. 분명한 건 쿠바에서 보기 드문 규모의 반정부 시위였다는 것이다.

쿠바에서 마지막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던 것은 1994년 8월이었다. 소비에트연방 붕괴 후의 경제난이 촉발한 당시 시위는 아바나에만 국한됐다는 점에서 이번 시위가 1959년 공산혁명 이후 62년 만에 최대 규모라는 분석도 나온다.

 

쿠바 출신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미국 마이애미와 스페인, 중남미 각국에서도 지지 시위가 이어졌다.

경찰의 강경 진압, 친정부 시위대와의 충돌 속에 일부 지역에선 시위가 과격해져 1명이 숨지기도 했다. 시위 이후 경찰에 끌려간 이들도 1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12∼13일에도 일부 소규모 시위가 이어졌지만 거리에 군경의 경비가 삼엄해지면서 11일과 같은 대규모 시위는 다시 펼쳐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시위 원인이 해소된 것이 아닌 만큼 불씨는 남아있다.

AFP통신은 20일 전문가들을 인용해 "쿠바 국민이 경제·정치 상황의 뚜렷한 개선을 확인하기 전까지 불만은 계속 끓어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식료품 구입을 위해 줄 늘어선 쿠바 아바나 시민들

◇ 경제난 속 생활고가 촉발한 시위…인터넷도 불 지펴
소셜미디어 영상과 외신 보도를 통해 전해진 11일 시위 현장의 구호는 다양했다.

"배가 고프다", "음식과 약을 달라"는 호소부터 "독재 타도"와 "자유", 그리고 공산혁명 구호 "조국 아니면 죽음"을 비튼 "조국과 삶" 등의 정치적 구호도 등장했다.

분노가 공산정권을 향하긴 했으나 일차적으로 시위대를 거리로 내몬 것은 극심한 생활고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쿠바 현지에 있는 외신들은 "음식도 없고 약도 없다"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자주 인용했다.

경제난이 극심한 쿠바에선 생필품을 사기 위해 여러 시간 줄을 서는 것이 보통이 됐고, 정전도 잦아져 기본적인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1962년부터 미국의 경제봉쇄를 겪어온 쿠바는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더욱 강화한 제재 탓에 이곳저곳에서 돈줄이 말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까지 더해지면서 관광업 등도 크게 위축돼 지난해 경제가 11% 후퇴했다.

 

올해 들어 이중통화제 폐지의 여파로 나타난 가파른 물가상승도 국민 삶을 더 고되게 만들었다.

쌓여가던 분노와 불만이 터져 나오게 한 데에는 소셜미디어도 역할을 했다.

쿠바에선 2018년에야 폭넓게 쓰기 시작한 소셜미디어를 통로로 체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수면 위에 올라오고 있었다.

이번 시위를 앞두고 소셜미디어 상에선 'SOS쿠바'라는 해시태그가 확산하며 시위에 불을 지폈다.'

◇ 채찍·당근 함께 꺼낸 쿠바 정부…개혁 속도 높일까
이례적인 시위에 쿠바 당국의 반응은 재빨랐다.

군경을 투입해 진압에 나서고, 친정부 시위를 유도하고, 시위 참여자들을 무더기로 잡아들였다. 무엇보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차단해 소통을 막았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 겸 공산당 총서기는 시위 직후 미국에 혼란의 책임을 돌렸다. 미국 제재 탓에 경제난이 심화했고, 미국 내 쿠바인들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시위를 선동했다는 것이다.

17일엔 아바나에서 친정부 시위를 주도해 반미 정서를 부추기기도 했다.

그렇다고 쿠바 정부가 시위대의 목소리를 묵살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시위 사흘 후 정부에도 일부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면서, 해외 여행객의 음식·의료품 반입 한도를 없애고, 비거주지역에서의 배급을 허용하는 등 국민을 달래기 위한 조치를 잇따라 발표했다.

쿠바 정치학자인 라파엘 에르난데스는 AFP통신에 쿠바 정부가 경제 위기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추가 비상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보다 근본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민간에 대한 경제 개방 등 그동안 더디게 진행됐던 경제 개혁의 속도를 높일지도 주목된다.

 

미 백악관 앞에 설치된 'SOS 쿠바'

◇ 쿠바 정책 재검토 나선 미국…양국 관계 변화 주목
이번 시위를 계기로 정책 변화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은 쿠바 정부만이 아니다.

미국의 대쿠바 정책에 대한 재검토 요구가 미국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트럼프 전 정부에서 제재 압박에 시달려온 쿠바는 지난해 미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된 후 버락 오바마 전 정부 때와 같은 양국 화해 분위기가 재연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에도 지금까지 양국 관계에서 뚜렷한 변화는 없었다.

그간 바이든 정부는 쿠바 정책 검토가 최우선순위는 아니라는 입장이었으나 이번 시위로 상황이 바뀌었다.

AP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이 전날 국무부에 쿠바에 대한 송금 정책 재검토를 위한 실무단 구성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전 정부가 쿠바 금융사들을 제재하면서 쿠바계 미국인들의 본국 송금에도 차질이 생긴 바 있다.

미 국무부는 이날 쿠바인들의 인터넷 접근성을 높일 방법을 찾기 위해 민간 부문, 의회와 협력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은 쿠바 국민을 도울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쿠바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밀려올 가능성에 대해선 경계심을 드러냈다.

1994년 반정부 시위 이후엔 한 달 사이 3만4천 명의 쿠바인이 미국으로 탈출했는데, 이번 시위 후 미 정부는 쿠바인들에게 미국으로 향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거듭 전했다.

김인식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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