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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공급, 풍요 - 2 연재

타락한 세상의 영향

등록일 2021년06월30일 19시09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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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 인류의 반란은 (창3) 모든 만물에게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다.

 

태초의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무너졌을 뿐 아니라, 땅을 통해 식량을 공급받고 재물을 얻는 능력 또한 잃게 되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실했을 때, 경제적 문제와 여러 가지 악이 따라옴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이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사이가 소원해지면서, 인간이 식량과 재물을 얻을 수 있는 능력 또한 약화되었다.

 

   결국 타락한 인류는 저주와 축복 모두를 안고 살게 된 것이다. 이는 노동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그 땅,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것들과 풍요로움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로 인해 심하게 훼손되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셨다.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창3:17하-19상)

우리는 식량을 생산해낼 수 있는 재료들을 통해 기본적인 식량도 일구어내지 못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이나 남의 잘못으로 인해 그렇게 될 수도 있고,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약물의 남용, 형편없는 업무 습관, 적은 교육기회, 병약한 신체, 상류층에 집중되어 있는 자원, 인종차별 등과 같은 수많은 장애물들이 개인, 가족, 공동체, 그리고 사회 전체가 하나님과의 동반자 관계 속에서 함께 식량을 생산해내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타락한 세상에서 공급하심과 재물을 향한 하나님의 본래 의도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크게 방해받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약 14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밖에도, 간신히 입에 풀칠만 할 정도로 생계만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11억 명에 달한다.[1] 이렇게 전 세계 인구의 40%에 가까운 이들이 경제적 빈곤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다.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본 것처럼, 이 같은 현실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 아님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가난에 시달려야 하는 것일까?

 

모든 것이 공평한 세상에서는 현명한 선택이 공급하심과 재물로 이어지고 잘못된 선택이 가난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원인과 결과가 확실하게 나타나는 세상에서 다음과 같은 잠언의 진리는 논리상의 오류가 전혀 없다.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잠14:23) 게으름, 헛된 사치, 형편없는 자제력, 그리고 중독적인 행동 등은 자연스럽게 빈곤으로 이어진다.

 

그 반면에 근면함, 현명한 소비생활, 강한 자제력, 그리고 중독으로부터의 자유 등은 부유함으로 이어진다.

 

이는 오늘날 전 세계 수백만 또는 수십억에 달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될 수도 있다. 즉, 그들의 상대적인 부와 빈곤은 그들이 어떠한 결정을 내렸는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또는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등에 크게 기인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원 및 교육의 접근기회를 얻을 수 있는 매우 안정된 사회가 있다고 하자. 그리고 질병, 재난, 가족의 역기능, 범죄, 사고 등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때, 이 사회의 구성원들의 개인적인 부와 가난은 아마도 개인적인 노력에 따른 공정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이 세계는 그러한 공평한 경쟁 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타락한 세상은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모두 다른 시작점에서 출발한다.

 

가족, 공동체, 그리고 사회 환경으로 인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세상의 기회가 좌우된다.

어떤 이들은 부유한 국가에서 사랑과 보살핌이 넘치는 가정의 자녀로 태어나 수많은 능력과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원이 매우 부족한 환경에서 태어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자급자족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원마저 공급받지 못한다.

 

   빈곤이 대부분 인류가 범한 일종의 죄 또는 실수의 결과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부족한 자원과 재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이 전부 그들 자신만의 죄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형편없는 정부, 전쟁, 부정부패, 권력에 의한 착취, 교육과 훈련의 부족, 가정 및 사회적 병폐 등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들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은 하나도 없지만 충분한 자원을 공급받지 못한다.

 

특히, 이러한 공급의 부족은 종종 사회 또는 개인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죄에서 기인한다.

즉, 가난한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지은 죄의 희생자라는 것이다. 가령 어느 폭군이 어느 한 가족의 땅을 압수해 그들이 더 이상 농작물을 생산하지 못하게 한다든지, 어떤 공장이 힘없는 노동자들을 착취하며 최소임금도 보장해주지 않고 이에 반발하는 이들을 협박한다든지, 부유한 지주가 울창하고 거대한 숲의 나무들을 베어내어 강의 하류에서 거주하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홍수의 위험으로 몰아넣는다든지, 어떤 남편이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이 가난에 허덕이는데도 도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든지, 사기와 속임수로 인해 투자에 실패해 가족들이 미래를 위해 힘들게 모아두었던 재산을 모두 날리는 경우 등등이 모두 그러한 예가 된다.

 

   그렇지만 모든 가난이 죄의 결과는 아니며, 어떤 특정한 사람이 지은 죄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닌 장애, 질병, 나이 등과 같은 다른 요인들로 인해 자급자족하지 못한다.

 

구약에서는 특히 과부, 고아, 그리고 이방인 이렇게 세 부류의 사람들이 약자로 묘사되고 있다.[2] 이를 내다보고 히브리 법은 이러한 약자들이 필요한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지니고 있다.

 

예언서를 대표하는 인물인 스가랴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스7:9-10)라고 말하고 있다.

 

   또 다른 종류의 가난은 천재지변으로 인해 생겨난다. 지진, 쓰나미, 가뭄 또는 홍수 등의 자연재해는 공동체를 전부 황폐화시키고 농작물과 집, 소유물, 생계수단 등을 눈 깜짝할 사이에 파괴해버린다.

 

그 예로, 2004년 인도네시아 해안과 동남아시아 일부를 휩쓴 복싱 데이 쓰나미로 인해 25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었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방편을 전부 잃어버렸다.

 

   따라서 많은 요소들이 작용한 결과로 나타나는 개인의 부유함 또는 궁핍함에 대해 마음대로 추측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일부는 개인 스스로가 자초한 것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범위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성경은 굉장히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이는 "부와 가난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는 개인이 자초한 것이라고 일컫는 부분은 잠언 전체의 1/3도 되지 않으나, 나머지 부분은 전부 사회경제적 정의와 그 문제를 인식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주목하기도 한다.

 

따라서, 성경이 부유함과 가난함을 어떠한 원인과 결부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성경은 가난의 구체적인 이유를 밝혀내는 데 치중하기보단 부유한 이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의무, 즉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의무에 대해 더욱 많은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양은식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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